▲페르시아 제국(광활한 영토를 지닌 제국이 였다)

 

 히브리 종교의 마지막 발전 단계 기원전 539년부터 300년경까지로 이를 ‘포수 이후’라고 불린다. 이 시기 히브리 종교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그들을 정복하고 이주시킨 페르시아였다. 당시 메소포타미아지역의 최강자였던 페르시아는 그들이 통치했던 영역에 미치는 권력만큼이나 문화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당시 그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던 그들의 독특한 종교 역시 수많은 민족에게 영향을 끼쳤는데 히브리 민족도 이 영향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 자라투스트라(그리스명 : 조로아스터)

 

▲조로아스터교의 표식

 

 당시 페르시아의 종교는 조로아스터교로 독특하면서도 매우 호소력이 강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어느 종교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이원론적인 종교라는 점이였다. 그들의 세계는 두 가지로 구분되었으며 각기 선과 악으로 대표되는 영적 존재에가 다스리고 있는 세계였다. 그리고 이 둘은 이 세상의 주도권을 가지기 위해 끊임없지 투쟁한다. 그리고 마침내 최후의 날 빛이 승리하고 모든 영혼들이 다시 부활해 빛의 신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교리를 주장하고 있었다. 이 종교는 선을 권하고 매우 중시했는데 이는 최후의 심판의 날 그들이 받게 될 복을 위함이었다. 이러한 종교의 특성은 대중들에게 상당히 쉽게 전파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강력한 호소력을 띄었는데 특히 뚜렷한 사후세계와 죽은 뒤에 또는 최후의 날에 받게 되는 보상 등은 민중에게 큰 호응을 받는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히브리 민족도 이러한 영향력 아래에 자유롭지 않았다.

 





▲ 메시아, 최후의 심판, 사탄은 이 시기 형성된 교리이다.

 

 수많은 민족이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았듯이 히브리 민족도 영향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그 종교에 녹아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강력한 매력의 교리를 자신들의 종교에 흡수하게 되었다.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적, 메시아적, 내세적 종교관은 흡수되고 변형되어 야훼를 절대적 선의 신으로 만들었고, 악의 근원으로 사탄의 존재를 만들어 냈다. 내세설과 메시아설의 경우 더욱 다듬어 발전된 종말론을 만들어 냈는데. 영적 구세주, 죽은 자의 부활, 최후의 심판의 개념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에 따라서 사후 세계의 개념도 바뀌게 되었는데 이제 사후 세계는 그저 단순한 음습한 장소가 아닌 살아생전의 일에 대한 보상이자 죗값을 치르는 곳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곳은 현재 세계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공명정대한 곳이자 가장 살고 싶지 않은 다시 말해서 문자 그대로의 지옥 같은 곳으로 변하게 된다. 이러한 페르시아의 영향은 궁극적으로 히브리인의 종교를 완성시킨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완성된 종교를 최종적으로 정리해 문서로 남기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의 [성경]이다. [성경]은 신의 직접적인 영감에 의해서 기록된 신성한 계시로 받아들여지게 되며 그러하기에 성경은 절대로 거스를 수 없는 가장 강력하며 신성한 것으로 간주된다.

 일찍이 기원전 1900년부터 자그마치 1600년의 세월 끝에 히브리 민족의 종교는 완성되게 된다. 후대에 [유대교]라고 불리게 된 이 종교는 현대의 인류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종교적인 부분에서는 감히 비교할 대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가장 작으며 힘없는 민족이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모든 존재들에게 박해 받던 민족이 이제는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서게 된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잃어버린 옛 땅을 다시 되찾고 돌아갈 수 있었던 것. 이 모든 것이 어쩌면 그들을 계속 지탱하고 하나로 뭉치게 해준 이 종교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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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가들의 시대

모세의 시대가 히브리 민족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면 이 시기는 종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기원전 922년 솔로몬왕의 사후에 국가는 둘로 분열되었고 밖으로는 강대한 국가들이 자신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사회적으로는 부가 편중되고 윤리와 도덕은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때가 히브리 종교의 세 번째 단계인 예언자들의 시대이다.

이 시대는 히브리 민족에게 불행했던 시간이었다. 나라는 둘로 분열되었고 외부에서는 막강한 힘을 가진 아시리아의 위협이 계속되었다. 내부적으로도 문제는 심각했다. 부는 한쪽으로 편중되어 있었고 가진 자들은 없는 자들을 핍박하는 것에만 힘쓰고 있었다. 당시의 이러한 상황이 성경에 자세히 나오고 있는데 당시의 부패가 얼마나 심했는지 고작 재판관들은 신발 한 짝 값의 뇌물에 사람을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아모스서 2 : 6, 8 : 4~6)

히브리 왕국의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웠던 이 시기는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가장 크나큰 발전이자 중요한 변화의 시기였다는 점에서 역사의 아이러니함을 느낄 수 있다.

 

 

                         

 

                                  

▲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
이들의 주도로 히브리 종교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

 

이 시기의 종교적 변화는 유명한 예언자들(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에 의해서 실행되었다. 당시 이스라엘 민족이 이러한 고난을 받는 것을 예언자들은 신의 분노로 표현하며 사회를 비판했다. 사회가 너무도 타락해서 신이 이러한 벌을 내리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히브리 종교의 신은 그전과는 다른 모습, 즉 유대교의 신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지게 되었다.

예언자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오로지 신만이 이를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또한 이를 믿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소가 추가되어야만 하였다. 모든 원인은 신에 의한 분노로 발생된 것이었다. 여기서 신은 자신의 분노를 충분히 표현할 만큼 막강한 힘을 지닌 존재로 설명되었으며 이로써 야훼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신의 성질을 갖게 되었다.(유일신) 또한 신은 당시의 타락한 사회상을 분노하는 존재로서 악을 멀리하고 선을 추구하며 약자를 보호하고 악을 행하는 부당한 존재를 멀리하는 윤리성을 갖게 되어 당시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 되었다.

이러한 종교적 변화는 가히 ‘혁명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기존의 종교적 교리를 벗어난 아예 새로운 교리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의 이러한 종교적 변화는 내부적인 자성의 목소리가 아닌 외부적 환경에 의한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종교 자체에 막대한 변화를 주는 일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 일을 추진한 예언가들은 자신들의 이러한 행동을 옳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이러한 변혁이 당시의 종교를 좀 더 순수한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일례로 당시 이민족의 종교에 보였던 많은 거친 제사 풍습들이 상당히 일소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교리의 변화는 당시의 대중에게도 무리 없이 들여졌는데 이는 이를 주도한 예언가들의 의도가 정확히 먹혀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패배감과 박탈감을 느끼고 있던 대중들은 변화된 신을 통해서 위안을 받고 의지할 수 있게 되었다. 강력하며 정의롭고 유일한 그들의 신은 강력한 적 아시리아로부터 자신들을 충분히 보호할 뿐만 아니라 당시에 부패한 권력층을 심판해 주리라는 믿음을 심어주었고 이를 통해서 민족은 종교라는 구심점 아래에서 견딜 수 있었다.

이러한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 종교는 유대교의 모습에 완전히 부합하지 않는다. 현재의 유대교가 가지고 있는 대적자(사탄)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내세관도 변화하지 않았다. 내세관은 여전히 그 지역의 내세관을 차용하고 있었으며 종교는 여전히 현실을 중시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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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을 이끄는 모세

(초기 히브리 민족의 종교와 정치 분야에 핵심적인 인물이다)

 

 기원전 13세기부터 9세기까지 히브리 종교는 두 번째 발전단계에 집입하게 되며 이 시기를 민족적 단일신 숭배의 단계라고 이야기 한다. 단일신 숭배란, 다른 신의 존재를 부인하지는 않지만 오직 하나의 신만을 숭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시기 히브리 민족의 역사는 모세를 통한 이집트의 탈출에서부터 여호수아를 비롯한 사사들의 통치와 사울로 시작되는 통일 히브리 왕국까지이다. 이 시기의 종교적 발전은 모세의 출현과 함께 시작되었다.

신은 이제 애니미즘적 요소에서 완전히 탈피되었으며 완벽히 의인화 되었다. 기존에 각 부족들이 믿던 수호신들은 이제 민족을 수호하는 하나의 신으로 점차 통합되었고, 그와 함게 기존의 신들과는 다른 고유한 속성을 가졌으니 그것을 나타내는것이 바로 이름이다.

 

 

▲ 시나이산

(모세가 이곳에서 야훼를 만나 십계명을 받았다고 한다)

 

 신의 이름은 YHWH. 즉, 야훼이다. 원래 야훼라는 신의 이름은 시나이 반도의 히브리 민족이 믿던 신을 뜻한다. 출애굽 과정에서 모세가 이를 받아들여 민족의 대표신의 이름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서 새로운 신의 존재성은 과거의 신들보다 발전되었다.

 이 시기 히브리 종교의 특징으로는 그들이 믿는 신이 고유성을 획득하고 단 하나의 신으로 정리되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신은 각기 다른 부족의 뜻을 대변하지 않았으며 그들만의 의미나 속성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대신에 종교는 민족의 공통적인 뜻을 추구하기 시작하고 이는 곧 민족적 이익이나 선행을 중시하는 개념으로 발전하게 된다.

 또한 이 시기에 하나의 신으로 통합된 것처럼 각기 부족이 가지고 있던 의식이 통일되고 이를 체계적으로 기록, 정리함으로써 유럽이 탄생했고 이것이 나아가 종교의 경전으로 발전되었다. 이때 집필된 성서는 창세기를 포함한 [모세5경], 솔로몬과 다윗이 기록했다는 [시편], [잠언] 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때의 종교는 후대 유대교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대표적으로 아직 신에 대한 관념은 유일신 숭배가 아닌 단일신 숭배였다. 이는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신은 아직 다른 민족의 신들을 부정하지 않고 단지 금하고 있을 뿐이다. 신이 그들을 금하는 이유는 그들이 거짓신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그러한 행위를 질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신은 전능하지 못 했다. 그의 권능은 그들의 영토에 국한되었으며 그들의 영토 밖의 다른 민족에게 어더한 영향도 주지 못 했다. 그의 권능은 그들의 영토에 국한되었으며 그들의 영토 밖의 다른 민족에게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 했다. 실제로 성경에 보면 신은 그들의 영토를 침범한 적은 물리쳐 주었지만 그 적을 아예 몰락시켜 위협을 없애주지는 않는다.

 또한 이 시기의 히브리 종교는 영적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이었다. 이제 신은 부족뿐만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부와 영광을 보장했다. 다만 약간의 윤리적인 측면이 강조되었을 뿐 영혼은 여전히 스올(Sheol)로 내려가 사라지는 등 내세관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는 후대 유대교뿐만이 아니라 서양의 사상적인 부분에도 영향을 끼친 중요한 발전요소가 나타났는데 과거의 애니미즘적 요소에서 완전히 탈피하여 신이 자연에서 완전히 벗어난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신은 자연의 법칙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행동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와 함께 신을 대신해서 인간이 자연을 맡게되었고 인간은 이러한 자연을 지배 할 수 있다는 당위성을 만들어 주었다. 이것이 후대의 서양인의 사고관에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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